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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 2011년 9월 28일(수) ~ 10월 18일(화)   
    개관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 서울 종로구 수송동45-15, 110-140, OCI미술관
    문        의 : 02.734.0440/1

 


정소영의 지오스케이프(Geo-scape)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의사, 과학자, 나아가 철학자 등 이른바 예술가인 동시에 학자로 대접받거나 대접받기를 원했던 '작가'와 '시절'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르네상스시대 작가들이 그러했고 그들이 그토록 닮고자 했던, 철학적/조형적 전거(典據)로 삼았던 고대 그리스 시대 작가들이 그러했다. 헤르메스상이나 헤라클레스상 등을 남긴 고대 그리스 최고의 조각가이자 이론가,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도 그중 하나다. 그가 남긴 '비례론(Canon)'을 비롯하여 당시 작가들이 관심을 갖고 정리, 적용한 '원근이론', '색채론' 등과 같은 조형이론들은 지금까지도 유효한, 자연에 대한 예술가들의 철학적, 과학적 관심으로부터 비롯한 학문적 결과물이었다.
 

예술가들의 이러한 철학적 관심과 과학적 실천은 신비스럽고 다소 혼란스러운 자연과 현상의 베일을 하나둘 벗겨내고 이들을 논리적,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나름의 분명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왔다. 각 시대마다 예술가들은 각각의 시각과 논리로 자연 현상이 지닌 무질서와 질서에 대해 인공적 질서 체계와 탈질서 체계를 부여해왔다. 그러나 20세기 현대에 들어서면서 예술과 과학이 명확히 구분되고 사회와 학문이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이 전과 같이, 뚜렷한 예술적/과학적 성과를 동시에 거두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물론, 과학적인 관심과 예술과 과학의 태생적 역학 관계가 개입된 작업들은 지금도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격인 장 팅겔리(Jean Tinguely)의 실험이라든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백남준과 그 후예들의 영상작업, 홀로그램 기법을 도입한 알렉산더의 작업, CG, VR, 3D 작업 등 동시대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업으로 이어져오는 전위적 조형실험들이 그것이라 하겠다. 이들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혼돈과 질서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각질서와 예술의 과학적 발전가능성을 꾸준하게 제시해 왔다. 그러나 이들의 실험이 과거처럼 과학적으로 정리되거나 새로운 학설로 학계의 인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예술에 과학적 방법을 원용하거나 도입, 확장시킨 정도였다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통섭, 이른바 융복합의 시대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예술가들의 이러한 철학적/과학적 관심과 학문적 성취, 조형적 실천은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가능한 것일까. 본격 과학문명의 시대, 예술과 과학의 만남은 테크놀로지의 도입으로만 가능할 것인가?
 

젊은 작가 정소영의 작업은 우주, 자연에 대한 과학적 관심, 이른바 지구과학(EDPS)적 관심에서 비롯했다. 특히 지질학적 관심(geological interest)이 두드러진다. 자연에 존재하는, 혹은 세상에서 경험하고 채집한, 개인적인 기억으로부터 떠낸 사물들의 물리적/심리적 부스러기, 각질, 지층, 껍질 등을 마치 지표조사 결과를 보고하듯 전시장에 부려놓는다. 그들을 통해 사물의 존재와 그것이 지녔던 본래 질서를 거꾸로 유추하고 강조하며 증명한다. 지표면과 단층, 분출 용암의 흐름 등을 매개로 자연 질서와 인공 질서 사이에서의 길항작용을 시각화한 최근 작업 역시 정소영의 그러한 지적 관심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이러한 관심은 어릴 적부터 가져왔던 세상과 자연의 질서에 대한 지구과학적 관심과 지질학적 호기심으로부터 비롯했다. 과학자를 배출한 집안 분위기도 그러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경험한 일련의 치명적 자연재해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발생한 우면산 산사태와 가까운 일본 및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예측할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 쓰나미 등과 같은 자연재해는 세상만사에 대한 작가의 지질학적 관심을 환기시키기에 충분했다. 작가에게 그것은 일종의 정신적 충격이었다. 평소 지구과학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캐스팅을 하듯 그것을 입체, 설치작업으로 떠내고 풀어온 정소영은 태고부터 지구의 지표면 아래, 깊숙한 그 어디를 도도하게 흐르듯 꿈틀거리고 있는, 이른바 대륙판과 맨틀 등과 같은 평소 눈에 보이지 않는 가공할 힘을 가진 존재를 생각하게 했다.
 

이러한 정소영의 관심은 인간이 현대, 문명, 과학의 시대를 거치면서 부여해온 세상의 모든 인공적 질서와 오래 전부터 그저 묵묵히 그리고 서서히 이어져 내려온 자연 질서에 대한 상대적 의문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해외 여러 곳에서의 생활과 각기 다른 저마다의 자연 지형에 대한 지구과학적 관심은 가변적인 것과 불변하는 가치에 대한 생활 속 관심으로 이어졌다. 자연이 인공 질서에 의해 부분적으로 제한되어 존재를 드러내거나 감추어지는 현상들, 자연 질서가 파괴되고 인공이 존중되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다양한 형식의 작업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흙과 세라믹을 이용한 성형작업은 원시의 방식대로 초벌구이한 상태로 제시된다. 고온에서 구어지고 먹(墨)이 살짝 더해진, 모노톤으로 탈색된 정소영의 심리적 지층 단편(斷片)은 마치 오래된 화석처럼 일정한 경도와 표면질감을 획득한다. 높고 낮은 이런저런 지형들은 일종의 심리적 등고선으로 실제 자연지형도 물리적 인공지형도 아닌 우리네 마음속에 존재하는 정신적 지형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풍파와 풍화작용에 의해 형성된 화강암의 표면과도 같이 부드러운 듯 거친 표정을 보이기도 하고 무언가에 의해 쓸려 내려간 흔적이 드러나는 등 유기적인 흐름을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정소영의 작업은 지구 내부에 상존하고 있는 굉장한 힘, 지층, 레이어 등에 대한 관심을 직간접으로 드러낸다. 정소영은 서서히 그리고 도도히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력과 공간에 주목했다. 현대도시는 일정한 계획 하에 구획되고 인공적으로 조성된다. 대부분 그리드나 변형된 격자, 방사형태 등으로 만들어진다. 두 공간을 동시에 살고 있는 작가 정소영은 이러한 공간들의 생성과 구성 그리고 진화과정에 대한 차이와 다름을 면밀하게 탐색하며 개입시켜나고 있는 것이다.

지구과학적인 지층과 지형의 형성과 변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 나아가 사회의 현실적 지형에 대한 인식과 접목은 정소영작업의 주요 모티프다. 한마디로 정소영의 작업은 인공에 자연을 대입,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오랜 과거의 현실에 미래적 현재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지하 깊숙이 잠복된 지층율(律)에 지상의 현실을 교차시킨다. 그러나 자연을 모방하는 자신의 행위 역시 인공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정부분 받아들이고 고백한다. 아마추어 과학자 또는 지질학자, 예술가로서 자연과 현상에 대한 본질을 규명해보려는 정소영의 태도, 혹은 지적 관심은 자연을 모방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지난 미술 역사에 다름 아닌 것이다.

과학과 예술의 공통점이 있다면 신비스런 자연 현상 속에서 또다른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다. 질서와 혼돈이 아름답게 공존하고 혼재되어 있는 자연은 인공적, 인위적 질서에 의해 존재 가치를 억압당하는 한편, 예술가와 과학자로부터 아름다운 질서를 부여 받기도 한다. 예술과 과학은 분명 가는 길이 다르다. 이를 테면 예술이 어떤 현상이나 본질에 대해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면, 과학은 분석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러한 상반된 방식과 태도는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여전히 예술은 과학과 상조(相助)하고 있고 작가들은 때때로 과학적인 태도와 방법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기도한다. 그러나 이들의 성과는 전술한 지난 시절 작가들의 지적 성취만큼은 아닐 것이다.
 

정소영은 이번 전시의 콘셉트인 지질학적 상상력을, 한편으론, 전시 공간이 일층, 즉 지층 레벨인 것에서 착안하기도 했다. 그가 소개하고 만들어낸 그라운드(ground) 개념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나고 형성되는 지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지형(building geology)이거나 그 결과를 보여주는 구조적 지형(geological building)이다. 이들 지형은 자연지형과 인공지형을 포괄한다. 그의 작업에서는 이들 질서가 이른바 길항작용을 하며 각각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것은 인공을 비집고 자연의 힘이 드러나는 형국이거나 인공의 질서를 통해 자연의 표정을 드러내는 방식 등이다. 이들의 조합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정소영은 이번 전시에서 인공의 질서 또는 새로운 지형을 통해 자연의 존재를 드러내거나 감추는, 자연/인공 지형이 강조된 작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자연의 질서, 자연지형의 형성은 대단히 느리게 오랜 시간 동안 진행된다. 반면 인공지형은 계획적이고 일방적인 동시에 빠르게 진행된다. 정소영은 이러한 빠른 흐름 속에 묻혀버린 가려진 자연의 지형, 질서, 표정을 드러내고자 한다. 인공 질서와 정해진 좌표에 의해 드러나는 자연의 어색한, 혹은 자연스런 표정과 인공의 질서에 의해 짓눌린 자연의 힘과 생성된 질서를 유추하는 수고가 필요한 이유다. 물길은 물이 흐른 길이다. 정소영은 현대도시 건설의 주요 패턴인 그리드 속을 유영하듯 헤집으며 흐르는 자연의 물길을 드러낸다. 나무, 자작나무로 떠낸 표정은 산업화된 인공의 지표면을 비집고 올라오는 물이라는 존재의 흐름을 담았다. 그 어느 곳에도 흡수되지 못하며 겉도는, 잠복되어 있던 기운, 지상으로 밀고 올라온 기운이다. 물을 전혀 다른 질료인 섬유결로 치환하여 생명질을 연상하게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라운드 레벨에 놓아두면 바닥의 문양처럼 보일, 그러나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벽에 부착된다. 역시 인공적 행위이기는 하지만, 자작나무의 결을 살리는 작업, 즉 사포를 사용하여 존재의 결을 살리는 과정도 주목된다. 인공과 자연의 상호개입과 길항, 인공의 선을 따라서 변형을 이루어온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연 존재의 모든 것은 어쩌면 인공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 자연의 모든 것을 다 따라할 수는 없지만, 정소영은 그것이 지닌 내적 규칙성을 따라 들어가는, 현대문명사회의 규율, 그리드를 따라 추체험하는 생활 속의 자연/인공 지형도를 그려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규칙, 틀, 규준, 질서 속에 자리하고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기도 하다.
 

정소영의 호기심은 건축과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다만 땅을 매개로 서로 상반된 어프로치로 진행될 따름이다. 서서히 진행되는 자연의 지형과 표정변화 그리고 인공적으로 공간을 구획하고 배치하는 인스턴트적인 집짓기라는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정소영은 이 두 공간에 사는 우리들을 연구하는 과학자와 작가에 다름이 없음이다. 이 둘을 서로 대비시키거나 접목시키는 작업이다. 사실 이것도 아이러니다. 따지고 보면 자연을 모방하는 행위도 인공적인 것이고 나아가 예술도 억지스러운 것이다. 물이라든가 바람 등이 훑고 쓸고 지나간 시간의 물리적 흔적과 퇴적, 궤적도 보인다. 보는 이로 하여금 물질을 통한 비물질적 기운, 즉 지표면 하부에 내재된 기운을 반추하게 한다. 지표에 드러난 세월의 흔적과 표정을 강조한다. 들어남과 드러냄, 물리적, 인공적, 심리적 매스를 부여하며 기와를 굽듯 조각편처럼 떠낸다. 기와를 얹어 나가듯 하나하나 차곡차곡 더해나간다. 이런저런 삶의 지형들을 채집해서 특징적인 부분들을 남긴다. 이러한 작업은 사진이라든가 드로잉 등과 같은 평면 작업으로 남기도 하고 입체화되어 제시되기도 한다. 동네 골목의 배관 공사 흔적,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한 삶의 단면 등 다양하다. 정소영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표정과 기운이다. 때문에 오늘도 그러한 기운을 포착하고 있다.
 

결국 정소영의 작업의 모티프는 일상인 셈이다. 그는 다름 아닌 일상의 지형을 떠내고 있다. 흔히 일상을 소재로 한 작업은 진부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류가, 예술이 존재하는 한 부정할 수 없는 영원한 화두는 일상일 것이다. 정소영은 일상에서 건져 올리듯 지층 아래로부터 지표면으로 건져 올린다. 현상적 삶의 표면으로 밀고 올라온 도도한 삶의 기운을 드러내고 담아낸다. 새삼 사소한 것의 힘을 본다. 주의 깊게 관찰하며 얘기를 건넨다. 이들의 지각, 지층, 지형과 구조를 탈각하듯 응고, 성형한다. 흙, 지표, 표면, 표정, 지각, 껍질 등 인류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품어 간직한 표정과 닮았다. 작가의 호흡은 표면에 스민 기운과 배어난 표정으로 침투하고 삼투된다. 정소영의 작업은 흙으로 빚어낸 인조석 그리고 물, 바람이라고 하는 물질과 비물질적 기운들이 물 흐르듯 그러나 단단한 표정으로, 오롯이 배어 있는 자연/인공과 나누는 이야기다. 작업에서 읽히는 연성과 경성 그리고 유기적, 무기적 대조가 마냥 흥미롭다. 일상을 캐스팅하듯 떠낸 정소영의 작업을 주목하는 이유다.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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